경부운하, 불편한 진실과 매니페스토
이명박 전 시장은 운하건설을 통해 한국을 ‘국운융성의 길로’ 이끌겠다고 한다. ‘운하가 성장’이라는 이른바 ‘운하경제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공약하고 있는 운하는 경부운하, 호남운하, 경인운하, 북한운하 등 4개에 달한다.
모름지기 공공정책은 명확한 목표와 추진전략이 필수 요소이고, 비용과 편익, 파급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전제돼야 한다. 또한 의제설정 단계에서부터 공론장을 통과한 숙의민주주의가 작동돼야 하며, 의회과정과 행정적 집행 및 환류의 세속화(secularization) 과정 속에서 체계적이고 질서 있게 정립돼야 한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공약은 공론화 절차를 생략한 채 일방적 선언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선진 민주정치에서는 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공론화의 공백’을 매우기 위한 방안으로 매니페스토(manifesto)를 제도화 하고 있다.
기실 매니페스토는 민주적 정당성과 아울러 공직 후보자의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의 명시라는 측면에도 맥이 닿아 있다. 따라서 공직 후보자는 국민에 대해 자신의 구상을 정확히 알려 국민의 선택권을 충족시켜야 한다. 공직 후보자가 선거에서 승리하여 공직에 취임할 경우, 공약은 정책으로 변환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공직 후보자는 필수적으로 자신의 정책구상을 실체화해야 한다. 특히 공약의 파급효과가 국가정책을 상당한 정도로 변경시킬 수 있는 수준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인의 유권자에 대한 진정한 서비스이자 책무라 할 수 있겠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부운하 공약은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의 중심에 서 있다. 아울러 그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예비적 검토가 요구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부운하 건설공약 두고 '어리석은 구상(foolish initiative)'이라고 지적하는 여론이 대세이다. 일련의 부정적 의견들을 일일이 검토해 보면, ‘청계천 복원’이 준 영감이 나르시즘에 물들게 해 경부운하를 구안해 냈다거나 하는 다소 주관적이고 선험적 비판 따위는 논쟁 축에도 끼지 못한다. 60,70년대 개발독재 시기 ‘토목건설 경제’ 때나 통용되던 ‘불도저’ 리더십이라는 단정적 견해는 오히려 폄훼로까지 비친다. 경부운하에 대한 여론의 문제제기와 평가배경은 나름대로 논리적, 내용적 타당성에 입각한 객관적 진술이 대세를 이룬다. 다소 격앙되었다고 해도, 나라의 미래와 국민들의 행복을 생각해 보자는 우국충정을 앞세울 뿐이다.
공론 환경의 검토를 기초로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몇 가지 객관적 발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보다 실질적인 지표에 의존하는 생산적이고 활발한 공론장의 멍석을 깔고자 한다.
일단, 식수원 오염문제부터 상정해 보자. 운하 건설은 그 자체가 자연훼손이며, 심각한 식수원 오염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히 폐오일 등 비점오염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수도권 및 영남권 3,000만 주민들에게 오염된 물을 마시도록 방관할 셈인가?
아름다운 월악산, 소백산, 속리산 국립공원과 백두대간 아래 24㎞나 되는 터널을 뚫어 한강물을 낙동강에 흘려보내야만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 산악지대에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우리 국토의 척추인 백두대간에 반드시 터널을 뚫어야 하겠는가? 하천 주변 습지의 훼손, 준설에 따른 서식지 파괴, 댐 건설로 인한 수질악화 등의 문제는 또한 어떠한가? 환경파괴의 단위들을 헤아리자면 더이상 열거법은 의미없는 일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지난 10여 년 이상 1인당 GDP 2만 달러를 넘어서지 못한 원인이 서울과 부산간 물류이동에 문제가 있어서인가? 그래서 19세기형 물류수단으로 21세기 지식경제를 이끌겠다는 것인가? 남한강을 파헤치고 낙동강을 뒤집어서 수많은 댐을 만들고 수문을 세워 운하를 만들어야, 그래야 GDP 3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있다는 말인가?
21세기는 지식기반 사회이다. 그물망(network)과 그물망 코(node)를 연결하고 소통과 개방을 특징으로 하는 유비쿼터스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운하건설에 20조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 액수면 우리나라 2년 치 국가 R&D에 상당한 금액이다. 이 재원을 교육, 인적자원개발과 신지식에 투자하자. 1/5인 3조원 정도면 전국의 미취학 아동들에게 무상교육도 가능하다.
더 이상 ‘불편한 진실'이 은폐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행복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은 행복한 미래를 소망하는 순박한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아야 한다. 더 이상 ‘플라톤의 동굴’에 머무르면서 억견을 숭상하지 말고 빛의 세계로 나와 함께 진실을 토구해 나갈 것을 정중히 요청하고자 한다. 이제 와 정히 철회하기 어려운 처지라면, 최소한 시민민주주의를 존중하여 매니페스토의 성실한 실천을 바란다.
경부운하의 화려한 수사뒤에 가려진 그늘을 알면 알수록 잠들기 어렵다. 불면의 시간이 지속되는 한 “경부운하의 ‘불편한 진실’ 이야기”의 펜도 휴식하지 못할 것 같다.
문득, 얼마 전 백두대간 어느 사찰 주지 스님이 주신 뼈 박힌 말씀이 법어처럼 느껴진다. “남북으로 나뉜 국토, 운하 만들어 또 다시 동서로 갈라놓을 것인가?” 주말 스님과의 곡차가 예약되어 있다. 양주 1병에 그칠 것이다.
스님과의 곡차를 위한 예산은 선물용 ‘지리산 흙피리 소년 한태주의 창작연주 하늘연못’ CD 1장 12,000원, 자동차 주유비 30,000원 도합 42,000원. 나의 주말 매니페스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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