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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민주당 플랜이 다시 발표되었네요..

뉴민주당 플랜을 총괄한 당 비전위원회의 위원장인 민주당 김효석 의원의 노고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효석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실때 원내기획실장으로 일을 함께 했었고,
뉴민주당 플랜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민주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2008년 9월에 뉴민주당 비전위원회(위원장 김효석 의원)을 구성했고,
수많은 연구를 통해 2009년 5월에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발표하자 마자, 당내에서 한나라당 이중대 논란이 벌어졌고, 치열한 토론을 전개하기도 전해
노대통령 서거, 김대통령서거와 이명박 반대투쟁때문에 실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김효석 의원은 "현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급조된 플랜이 아니라 오랜 동안 준비했고 100명 이상의 전문가들의 토론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당의 지도부를 포함해서 당의 주류건 비주류건 당 밖의 인사들이건 함께 토론하고 논의해 가면서 완성해 가야할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뉴민주당 플랜은 무려 1년 반만에 탄생한 옥동자입니다.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비전과 미래를 최초로 발표한 것입니다.
'자유가 들꽃철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다가오는 세상'입니다.
제블로그를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2008년 2월 손학규 대표의
제3의 글도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입니다.

김 의원은 "뉴민주당플랜이 나간 뒤에 당에서 성장이냐 분배냐는 논쟁이 붙고 있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우리가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 논리에 말려들어선 안된다. 우리 나름대로의 목적과 방법이 다른 포용적 성장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국민과 함께 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쓰는 중도실용, 친서민, 그리고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정책은
사실, 민주정부 10년동안 우리가 추구했던 가치입니다...

지금의 민주당이 반대에만 급급해서, 새로운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제를 선점당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그 첫번째로 교육분야 정책발표가 있었습니다.
강남에서만 용이 난다???


YTN 돌발영상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군요..
사교육비 부담을 호소하는 주부들에게
이명박은 '애들을, 왜 학원을 보내냐?'며 주부를 타박하네요..

http://durl.kr/afwj

민주당은 강남이 아니라 개천에서도 용이나는 교육을 꿈꿉니다...

교육이야말로,
모두에게 '기회의 창'이기 때문에...

고1인 우리 딸에게 교육은 기회가 되길 바라며...

http://blog.daum.net/hsk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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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

지난 5월 10일부터 2박 3일 동안
김대중 도서관 후원회에서
금강산에 가서 나무심기 행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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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이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늘 도서관후원회 카페에 가니
당시 사진들이 올라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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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저도 나무를 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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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금강산에도 올라갔습니다.
저는 등산할 때 맨발로 하거든요..
나의 발은 신발을 벗고
북녁땅을 밟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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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김대중 도서관에 오시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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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

5부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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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복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이상구) 그렇다면 이제 성장동력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지요. 혁명적인 복지국가 역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필요로 합니다. 역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필요합니다. 복지와 성장 간의 관계를 이야기 해보면 좋겠습니다.

(정승일)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주력은 대기업과 재벌이었습니다. 재벌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공을 인정하면서 예를 들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하는 등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역할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여기서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였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80%를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형편에 앞으로 경제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국제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소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괜찮은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을 가르쳐 쓸만하게 되면 대기업으로 이직해버리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6시그마 경영기법 등 여러 가지를 가르쳐 놓으니 바로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대기업으로 가버린다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중소기업의 고부가치화가 않되고 있습니다. 산업고도화가 안되니 경제성장이 안 되는 거구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무현 정부가 지난 4년 동안 노력을 했죠. R&D(연구 개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혜도 주고요. 정부는 혁신적 성장동력이라고 R&D만 강조하는데 실은 중소기업이 정말로 아쉬워하는 인력은 R&D 인력이 아니라 현업에서 실무력을 발휘하는 인재입니다. 만일 혁명적으로 복지국가를 견실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중소기업 다니더라도 생활면에서 대기업 직원에 비해 별다른 차이를 못느낀다면 우수한 인재들이 굳이 중소기업을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혁명적 복지국가 아래에서 우수한 직업훈련과 대학교육을 국가재정에 의해 책임짐으로써, 대량의 우수한 인재가 중소기업에게도 공급된다면 그야말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고, 기업들의 생산성이 쑥쑥 높아지고 기술혁신, 경영혁신이 절로 이루어지니, 경제성장이 절로 될 것입니다.

(윤종훈)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복지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자체가 중소기업을 소외시켰지요. 왜냐하면 차세대 성장동력(로보트, 연료전지 등등)이니 해서 주로 삼성전자, 현대차 등 잘나가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정부가 R&D 보조금까지 줘가면서 더 잘하라고 밀어준 것에 불과하니까요. 이제는 과감하게 중소기업에 R&D 보조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R&D 능력도, 그 관리능력도 떨어지는 중소기업에 직접 R&D 보조금을 지급하면 그 돈을 ‘눈먼 돈’으로 간주하여 아무데나 사용하는 등 문제가 많기 때문에 직접 주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이 경우 국가 돈을 기업이 아닌 대학에, 대학이 관리하는 실험장비와 계측장비 등에 지원하여 간접적으로 중소기업이 이용하게 하면 됩니다.

교육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가 말한 연구중심 대학은 인재양성기관이 아닙니다. 어떤 지역, 가령 경북지역에 연구중심대학이 있으면 그 대학은 중소기업과의 R&D협력 중심체가 되는 거예요. 연구중심대학과 중소기업간의 연계에 대한 기술개발일수록 국가가 지원을 하라는 거예요. 이렇듯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이 대학정책, 중소기업 정책과 연계되어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여야 되는 거죠.

노무현 정부가 혁신클러스터를 말하는데, 실은 R&D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은 혁신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서도 복지클러스터, 교육/직업훈련 클러스터, 생태/문화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과 문화, 의료, 체육과 레저, 생태환경 등 삶의 기본 영역에서 질 높고 저렴한 복지서비스가 제공되는 지역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래야만 그 속에서 높은 수준의 창조적 과학과 기술, R&D가 싹틉니다. 그래야만 그곳에 모일 인재를 보고 중소기업들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혁신 클러스터가 만들어집니다. 이렇듯 이제는 과학기술 정책과 복지정책, 교육정책, 문화정책 등이 하나의 패키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성장이 담보되지 않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드는 복지국가

(배규식)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기업별 복지도 큰 차이가 나지만 중소기업은 임금도 지급하기 빠듯하니 우수한 인력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대기업 정규직에게만 제공되는 기업별 복지체제를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 국가적 복지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중소기업에 근무하더라도 복지면에서 차별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직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불공정한 하청거래의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하청기업은 교섭력에 차이가 있어 아무리 정부가 감시해도 그 계약내용이 중소기업에 불리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은 하청 중소기업이 죽지 않을 만큼만 이윤을 인정해 준다는 말이죠.

우리가 공정한 시장경쟁, 공정한 시장질서의 필요성을 말할 때 핵심적인 과제가 이 부분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조사해서 하청 중소기업들도 적정이익을 내어 종업원들의 임금을 올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제조업 중소기업의 3분의 2 가량이 하청기업이라는 것을 보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정승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동반성장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불공정 하청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고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개혁진보세력은 재벌계 대기업을 비난하는데, 실은 이 문제는 재벌 문제가 아닙니다. 비재벌 대기업들도 비슷한 불공정 하청계약 행위를 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개혁진보세력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한 불공정 하청 감시를 요구하는데, 실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하청관계를 감시하는 직원들이 몇 명 안돼요.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매년 수십만 건의 하청계약을 심사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 이면계약을 하기 때문에 잡아낼 수가 없지요.

그래서 중소기업 하시는 분들은 검찰에 아예 신문고를 만들어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중소기업청’이라는 조직이 있고 이 기구의 목적이 중소기업 지원입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청에 불공정 하청거래를 조사하고 수사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검찰에 고발하는 준사법권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미 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제도 등 유사한 선례도 있구요.

(배규식)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하청 감시 인력을 늘려야 하고, 동시에 중소기업청에 불공정 하청 감시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여 수사권을 부여하여야 합니다. 또한 셋째로 중소기업 업자들의 자발적인 협동조합적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중소기업 협동중앙회라는 조직이 있지만, 과거 정부지원을 노린 관변단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발적 목소리보다는 정부의 입김이 오히려 강합니다. 만약 중소기업 혐동조합이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불공정 하청 감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낸다면 단결된 교섭력으로 새로운 시장질서를 만들어갈 능력이 생긴다고 봅니다.

네 번째로는 산별교섭이 없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불공정 하청계약이 발생하는 것을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대기업 종업원들입니다. 이런 다원적인 방식을 통해서 불공정한 계약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이야기를 하자면,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은 박사급 고급 인력이 아니라 석사나 학사급 인력입니다. 요즘에는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과거보다 R&D의 필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수한 인력이 중소기업을 떠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중소기업의 허술한 인력관리입니다. 훌륭한 R&D 인력을 일용노무자 다루듯 막 다루는 중소기업 경영진이 너무나 많습니다. 체계적인 고급인력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중소기업들을 보면 취약해요.

복지국가를 위한 금융개혁

(정승일) 우리나라 개혁진보 분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환상이 많아요. 마치 중소기업은 진보 편이고, 대기업은 보수 편인 듯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중소기업 사장님들 매우 야만적입니다. R&D 인력 다룰 줄도 모르고 노동조합이라면 치를 떨면서 거의 대부분 보수정당을 지지합니다.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드니까 도와주어야 하지만, 실은 많은 중소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합니다. 저임금을 경쟁우위로 삼는 중소기업들은 과감하게 중국, 동남아 혹은 북한으로의 이전을 국가가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R&D 인력을 우수하게 관리하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 있다면,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이 쪽으로 합병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양자 모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은행 등 금융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실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창업자 가족이 경영하는 가족경영체제이거든요. 분명히 더 높은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쪽으로 인수합병이 일어나야 하고 그래야만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등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데도 이들 창업자 후계자는 경영권 잃는 것이 두려워 이를 주저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은행의 역할입니다. 거래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업간 M&A를 중재하여야 하고 그 밖에 중요한 컨설팅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행들은 중소기업들에게 컨설팅할 능력이 별로 없어요. 능력이 없으니 주식을 보유한 경우가 없고 대출만 해주고요.

우리나라는 앞으로 중국의 도전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이 구조조정을 당할 것입니다. 제품과 사업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해외이전하거나 아니면 파산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할 터이니 이들에게 질 높은 전직훈련과 함께 실업수당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 국가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들 중소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산업고도화를 도와주고 주도하는 금융자본이 필요합니다. 미국식 사모펀드가 아니라 은행들, 특히 고객기업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행동하는 유럽식 은행들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런 일을 기존의 시중은행들이 하지 않는다면, 지방공립은행, 협동조합 은행 같은 것을 만들어서라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가령 기존의 기업은행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중소기업 혐동조합 중앙회 같은 조직이 자발적으로 중소기업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협동조합형 은행을 만들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일자리를 통한 경제성장

(이태수) 성장동력을 말할 때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수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자리란 경제가 성장하면서 민간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공공부문 일자리는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이 최근 성장의 특징이자 한계라는 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합니다. 즉 ‘사회적 일자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1990년에는 1%의 경제성장이 11만 2천명의 고용을 창출했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9만6천명만을 창출합니다. 당장 삼성재벌의 순이익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오히려 직원은 감소했다는 명백한 사실,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기는 현실 앞에서 민간경제의 성장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답이 아닙니다.

현재로서는 오히려 공공부문, 특히 사회복지부문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매우 유용한 전략입니다. 전체 취업자 중 보건, 복지 부문의 비중이 3%대에 머무는 우리나라는 11%의 미국, 19%의 스웨덴 등에 비하여 너무나 적으며 이것이 결국 복지의 후진성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면 그만큼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이 부분에 숨어있다는 것이지요. 작년에 정부가 보수적으로 추정했을 때도 91만 명이 모자란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복지부문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확대됨은 물론 노동의 질이 높아져 생산성이 증대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구매력이 향상되어 소비가 늘어나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이상구)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인식전환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적극적인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특히 공공부문에서 많은 일자리 창출 여지를 가진 우리나라의 경우 ‘고용을 동반한 성장전략’ 중 최우선의 정책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제시된 것 이외에 역동적 복지국가의 성장동력으로 제도화해야 하는 것들이 또 있을까요?

(이태수) 좀 더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요, 우리가 추구해야할 복지국가는 소비적, 정태적 복지국가가 아니고 생산적, 역동적 복지국가입니다. 이러한 복지국가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우선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어떠한 개인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기본적인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어야 하며 보편교육, 의료에 대한 접근권도 완전하게 보장되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이러한 소위 보편적 복지제도의 토대 위에서 역동적 복지국가를 이루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사회를 활기차게 움직이고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하게 하는 것은 능동적 복지와 혁신적 경제가 결합되어 서로 상승작용을 하게 될 때 가능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능동적 복지와 혁신적 경제의 결합, 이것이 바로 혁신동력인 것이지요.

지금까지 나온 말씀들을 정리해 보면,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대상별 맞춤형 특성화 교육, 평생교육 시스템의 확립을 통한 모든 국민의 잠재능력 극대화는 능동적 복지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것이 혁신적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산업고도화와 미래형 혁신기업을 위한 금융구조 확보와 결합되어야 하고 또한 복지․교육․직업훈련․문화 클러스터의 구축,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혁신적 경제정책과도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더불어 공공부문 혁신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공공부문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사후적, 소극적 기능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공성 붕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공공부문은 민간기업보다 더 적극적으로 혁신적 조직 모델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기능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 스스로 선도적 지식기반형 조직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對국민 서비스 위주로 인력 재조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수호자’가 아니라 ‘공익의 수호자’로서 공공부문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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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혁명론 4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복지국가

(이상구)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오늘날의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저출산 문제를 놓고 살펴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출산 문제도 경쟁원리 관철에 대응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아서 생긴 현상입니다.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저출산도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아기를 낳는 것보다 낳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니까 안낳는 것입니다. 취업 안되고, 직장이 불안하니 결혼도 기피하고, 결혼해도 육아부담, 주거비 부담, 교육비 부담 등으로 상시적 불안상태에 있으니 애기를 잘않낳으려 합니다. 그야말로 “합리적 선택”입니다.

짐승도 불안하면 새끼를 못 낳습니다. 발파공사로 인한 소음이 극심한 지역의 돼지는 출산력이 심하게 떨어집니다. 3교대로 무지막지하게 근무를 돌리는 종합병원 간호사는 출산율이 떨어지거나, 임신이 잘 안된다는 산업의학 논문도 있습니다. 이익에 눈먼 병원들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선진국 병원의 30% 수준에 불과한 적은 인력으로 강행군으로 운영하는 까닭에 간호사들이 막중한 업무에 허덕대고 있습니다. 간호 인력 부족분을 간호사의 과잉노동과 그리고 전문성이 낮은 간병인, 직장 포기하고 환자 돌봐야 하는 가족원의 눈물겨운 노동력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병원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희생입니다.

(이태수) 저출산이야말로 그동안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삶의 모든 문제를 각자의 능력과 시장에서의 생존력에 맡겨온 우리에게 가해진 자연법칙에 의거한 재앙입니다. 2001년 기준으로 스웨덴이 아동 1인에게 투여하는 사회적 지출이 3,961 달러, 우리는 40 달러! 이 엄청난 격차는 결국 우리 사회를 아이 낳아 기르는 데에 가장 힘든 나라를 만들어버렸고 아이들의 삶이 부모들의 수준에 의해 그대로 결정되어 100만 빈곤아동과 30만 결식아동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지요. 이런 점에서 우리사회는 가장 야만적인 사회, 가장 정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윤종훈) 저는 아동복지 얘기만 나오면 흥분됩니다. 조선일보조차 우리나라 결식아동이 30만이라고 지적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린이에 대한 학대, 결식 등 참으로 야만적 국가입니다.

2004년에 처음 북유럽의 어느 산골 마을에 일주일 갔다 오고는 잠을 못 잤어요. 길가에 보이는 것이 모두 보육시설이었어요. 한 블록마다 20명, 30명 규모의 보육시설이 건물 1층에 있어요. 시설이 곳곳에 있으니 출근하다가 맡기고 일 끝나고 아이들을 찾아가는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찾기 어려운 골목 끝이나 2, 3층에는 보육시설을 설치 못한답니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다 보여요.

100% 돈 안 들고 시설이 너무 좋아요.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얼마나 잘 대해주느냐 야말로 그 사회가 민주화된 사회인지를 볼 수 있는 척도입니다. 사회적 삶의 중심에 여성․아동․노인․장애인과 같은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게 느껴져요. 횡단보도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 빠른 걸음 속도에 맞추어 신호등이 바뀌는데, 북유럽 나라에서는 노인과 여성의 속도에 맞춥니다.

우리나라는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대부분 세금인상은 반대합니다. 북유럽에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조차도 세금은 복지라고 인정을 합니다.

원하는 모든 이에게 질 높은 교육의 기회를

(이상구) 제가 네덜란드의 경험을 말씀드려 보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집에 돈이 없어 힘들게 다녔습니다. 장학금을 못타면 방학 중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다음 학기 등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는 대학생들, 심지어 외국인 대학생들에게도 무상학비과 학교기숙사에 입사 자격은 기본이고 주거보조금까지 주더군요.

네덜란드는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면서 영국과는 바다를 끼고 있는 등 지정학적인 위치로 수출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국가적 필요성 때문에 국가가 이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킵니다. 또한 대학교육의 질도 매우 높습니다. 대부분의 네덜란드인들이 혜택을 받는 높은 수준의 공공적 인재양성이야말로 네덜란드의 국제경쟁력을 낳은 원천입니다. 다름 아닌 복지국가의 일부인 양질의 공공교육입니다.

학생들을 위한 복지는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지하철 요금이 엄청나게 비싼데 대학생들은 그 2분의 1 정도의 가격만 냅니다. 이러한 사회보장과 교육지원 속에서 훌륭한 과학연구, 인문학 연구가 나오고 기술혁신이 나오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나옵니다.

우골탑 이야기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부모들의 큰 부담입니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 해가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과연 국가적 장래를 위한 기초학문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까? 단기적으로 돈 될 과목만 듣고 취업에 도움될 것만 공부할 것입니다. 물리학과 철학보다는 의대, 치대, 한의대에 진학하고 행정고시, 사법고시 보려는 것이 당연합니다.

(정승일) 각광받던 한류도 요즘은 콘텐츠가 없으니까 한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문화의 인문학적 기초가 취약하고 시인과 소설가들 대부분이 쫄쫄 굶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시나리오가 나타나기 힘들고 제대로 된 시나리오 작가가 탄생하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유럽국들은 의지가 있고 능력만 되면 모든 사람이 대학까지 무료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미국도 기업에 필요하고,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 생각하면서 장기학자금 융자제도 등 등록금 후불제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주의 복지로

(이성재) 방금 네덜란드에서 학생들 방세까지 국가가 대준다고 하셨는데 혹시 저소득층 자녀들만 주는 것 아닌가요? 참고로, 선별적 복지국가는 못사는 사람에게만 그런 복지혜택을 주는데 반해,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잘사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복지혜택을 줍니다.

우리나라 개혁진보세력은 지금까지 선별적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선별적 복지국가 체제에서는 저소득층만 복지혜택을 입을 뿐, 중산층이 제외되고, 그럼에도 중산층은 가장 많은 조세부담을 안기 때문에 중산층이 대부분 복지국가 확대를 반대합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진보적인 것은 보편주의 복지국가입니다. 부자건 가난하건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양질의 저렴한 교육복지, 의료복지, 주거복지, 노후복지를 누리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국가모델입니다

(이상구) 제가 네덜란드에서 몇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대학생이 공부하겠다고 하고 국가가 그것을 도와주는데 왜 소득에 따라서 차별하느냐고 말하더군요. 소득파악을 통해 돈없는 사람만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승일) 제가 공부했던 독일은 대학까지 포함한 모든 학비가 기본적으로 무료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대학생들의 생활비도 대여장학금 형식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소득조사를 통해 평균소득 이하 가정 출신의 대학생들에게만 생활비를 제공합니다. 소득수준이 우위에 있는 학생들은 국가가 이런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일종의 선별적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재) 우리 국민들은 선진국 국민들과는 달리 지금까지 보편적 복지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농담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과연 그런 지상낙원 같은 복지체제가 대한민국에서 실현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겁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국민들이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공유하게 될지 고민스럽습니다. 아무튼 독일은 학비는 국가가 다 대주는 겁니까?

(정승일) 박사과정도 학비는 모두 무료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독일과 스웨덴, 네덜란드만이 아니라 프랑스, 벨기에, 등등 유럽에서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입니다.

(이성재) 나도 대학을 다니는 자식이 둘인데, 감당하기 힘듭니다. 제가 명색이 변호사인데도 이렇게 힘드니 그렇지 않은 직장인들은 엄청나게 허덕인다는 거예요. 이런 어려움이 해결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정치인, 공무원들은 그런 나라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요?

(윤종훈) 지금도 충분히 가능한데 국가가 엉뚱한데 예산을 쓰기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교육에 국가가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가 핀란드에요. GDP 대비 7.2%입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잡힌 것이 7.1%에요. 거의 세계 2위이죠. 그런데 그 7.1% 중 정부지출은 4.5%도 안되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 즉 가족 부담입니다.

그런데 실은 우리나라의 교육비 지출이 7.1%를 훨씬 넘습니다. 과외비, 학원비 등은 세금신고를 3분의 1 밖에 안하니,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런 것까지 합치면 아마도 GDP의 10%가 넘는 돈이 교육비로 지출될 것입니다. 세계 1위이죠. 그런데도 우리나라 교육이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질은 낮고 효율성도 낮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총생활비의 20% 가까이를 사교육비로 씁니다. 나는 학부모들에게 사교육비로 총생활비의 20%를 쓰지 말고, 그 대신 총소득의 10%만큼을 세금으로 더 내면 국가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훨씬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지 않겠냐고 묻고 싶습니다. 사교육은 거품이 많고 질 관리가 안 되는 뻥튀기가 있거든요.

교육재정 복지화와 교육내용 선진화

(정승일) 민노당이나 전교조도 교육의 무료화 혹은 교육재정의 국가부담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재정만이 아니라 교육의 내용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학교육의 내용이 직업훈련(취업준비)의 측면에서도 질적으로 낮고, 교양교육과 기초학문 교육의 측면에서도 질적으로 낮은데, 그런 저열한 수준의 대학교육을 위한 재정부담을 국가가 전적으로 떠맡아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야하는데 대해 국민들이 저항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중고등학교 교육의 경우에도, 지금처럼 영어, 수학에서 체육, 음악, 미술까지 전과목을 다 배워야 하는 잘못된 교과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그리하여 내신성장 향상을 위해서는 체육과 음악도 과외공부를 시켜야 하는 그런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중고등학교 교육비의 전액 무료화를 주장해봐야 별 호응이 없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과 독일처럼, 고등학교 교육을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3가지 전공으로 나눠서 전문화시키고 또한 실업계 고등학교를 잘 발전시키는 교육제도 개혁이 필수적입니다. 철학을 장래에 전공하겠다는 고등학생에게 미적분과 체육, 미술 등 모든 과목을 강요하는 현재의 교과체제를 대폭 바꾸어야 합니다.

교육재정의 국가부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교육내용도 현대화되어야 합니다. 대학도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 일반대학으로 3중화해야 합니다. 기초학문 위주의 일반대학은 학생들이 졸업해도 취업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되는 기초 자연과학과 기초인문․사회과학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대학들은 학생들이 별로 없더라도 학과를 유지해야 하고 우수한 교수들을 채용하여 연구에 매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대학의 사명은 학생교육 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연구와 이를 통한 국가적 문화역량 강화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교육중심 대학은 정말로 기업과 노동시장이 원하는 인력을 양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학생들이 장래에 취업할 기업과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교과목 편성과 교수채용에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만약 이렇듯 대학을 3중화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다면, 그에 맞추어 입시제도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기초학문 위주인 일반대학은 본고사와 논술고사 등을 도입하여 입시자의 기초학문적 소양을 측정하여야 합니다. 교육중심 대학의 경우 취업을 위한 교육이 우선이므로 이런 것이 필요 없습니다. 각 대학들은 자신의 특성과 교과과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교육재정 국가부담의 원칙은 이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즉 우리의 목표는 연구중심대학이건 교육중심대학이건 관계없이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입니다.

(배규식) 사람들의 삶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안하니 미래에 가장 안정적으로 살아갈 직업을 사람들은 우선 순위로 놓습니다. 의사와 변호사, 교사, 공무원 같은 전문직이 되라고 자식들을 부추깁니다. 이를 위한 교육을 하다 보니 과잉 교육비 지출이 나타납니다. 불안감이 작동하는 한 사교육이 기승부릴 것입니다. 일자리 문제, 경제성장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면서 공교육을 확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공교육 확대만을 외쳐서는 학부모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힘듭니다. 즉 교육재정의 국가부담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전반의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정승일) 고등학교 학비를 없애고 나아가 대학을 무상교육으로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대학이 무상이면 뭐합니까? 대학 나와서 실업자가 되거나 아니면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하러 사설학원을 다녀야 하는데요. 이런 문제를 동시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무상교육만 고민해서는 해답이 않나옵니다. 대졸자의 취업가능성 문제,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교육에 대한 논란 등의 문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개혁진보 세력은 모든 것을 각론으로만 접근했습니다. 재벌문제를 재벌문제로만 보고 조세개혁, 복지개혁 등의 문제와 따로 취급했습니다. 교육문제는 교육문제로만 보려하고, 사회전반의 문제로부터 고립시켰습니다. 교육문제 중에서도 교육재정 무료화만 고민하거나, 입시제도만 따로 고민했습니다. 대학 혹은 전문대를 나와서 어떤 직장을 얻는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해가면서 교육정책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렇지 않았다는 거지요. 이제는 이런 식의 각론적 해결이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종합적으로 연결하여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복지국가혁명이 바로 그 큰 그림입니다. 그 그림 속에서 교육, 복지, 재벌, 금융, 중소기업 등등 각론적 문제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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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개방과 복지국가

(이성재) 김영삼 대통령이 OECD 가입한다며 ‘세계화’ 한다고 한 이후에 이제는 세계화를 붙이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 취급 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세계화가 국민의 불안을 낳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도 집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세계화로 인한 압력이 있어도 사회복지가 일정 정도 뒷받침해주면 유지가 가능한데 그런 것이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나눈 말씀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은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인데 다른 나라 국민들도 우리나라국민들 만큼이나 불안한지도 묻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화의 압력이 있어도 사회복지가 국민의 생활을 뒷받침해주면 사회가 불안하지 않게 유지 가능한 건데 사회복지라는 뒷받침 없이 세계화만 강행하니 조만간 사회시스템이 폭발해 버리지 않겠습니까?

(윤종훈) 북유럽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핀란드는 인구 500만, 스웨덴은 인구 천만 정도이기 때문에 내수시장만으로 경제를 유지 할 수 없습니다. 핀란드의 국민기업이라는 노키아는 국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도 안 되며 90% 가까이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시장개방을 했는데 그런데도 국민들은 불안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그대로 삶의 불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핀란드가 복지국가 유지를 위해 매우 높은 소득세를 개인에게 부과시키는데도 기업과 사람들이 핀란드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핀란드만이 가진 경쟁력 때문입니다. 그러한 높은 세금으로 유지되는 고도의 복지국가가 만들어내는 경쟁력 있는 인력이야말로 최고의 국제경쟁력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해도 인생 막다른 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회사에서 잘리면 인생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복지국가가 2년까지 다른 직장을 준비하며 공부할 기회를 줍니다. 따라서 한두 번 실패가 있더라도 절망이 없는 사회, 언제든지 새롭게 도전할 기회를 주는 사회, 안정과 혁신이 같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복지국가 시스템이지 세계화가 아닙니다. 복지를 낭비로 보는 것은 왜곡된 시각입니다. 시작도 안한 복지를 두고 복지병을 우려하는 것도 지식인들의 기만이나 무식의 소치입니다.

(이성재) 한미FTA의 경우에도 복지를 빼놓고 생각하니 답이 나오지 않는 갑갑한 상황이 됩니다. 시장개방이 문제가 아니며 노동유연성도 문제가 아니라면 복지국가의 결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시장개방을 반대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 사회복지 제도의 확립이 살 길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상이) 개방과 유연화가 준비 안 된 개방, 준비 않된 유연화일 경우에는 국민이 고통스러운 거죠. 스웨덴, 핀란드는 능동적으로 개방하고 유연화시킨 경우인데, 능동적 개방이 가능한 것은 높은 수준의 복지인프라 구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승일) 94년도의 WTO 협상에서 농민운동은 시장개방을 반대하기만 했고 그 반대편 사람들은 시장개방의 장점만 봤습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시장개방은 무조건 반대할 것도 아니고 무조건 찬성할 것도 아닙니다. WTO에 가입하기 전에 먼저 선진국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야 했고, OECD 가입에 즈음한 금융시장 개방 이전에 악성 외국자본이 제멋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융보호 장치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 개혁진보 세력은 은연중에 대부분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었습니다. 세계화가 무조건 좋으니 사회보장도 없이, 금융시장 보호장치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무능한 진보, 방향과 내용을 상실한 진보

(정승일) 또 하나 논의해야할 점은 왜 우리나라의 개혁진보 세력이 복지국가 구상을 지난 20년간 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게으름과 태만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나요? 우리나라 진보세력 중 많은 분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복지국가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불과하므로 더 이상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대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항상 반대만 했지 구체적 대안은 한번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 ‘현실주의’ 개혁을 주장해온 세력은 구체적 대안들은 제시했는데 실은 그것이 자유주의적 시장개혁 노선과 대동소이했습니다. 이들 현실주의 개혁세력은 투명성 강화 등 시장원리 철저화에 관심이 있었을 뿐 복지국가에 대한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개혁진보 세력은 대안제시에 무능했습니다. 무능한 진보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합니다.

(배규식) 90년도 초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진보세력은 미래지향성을 잃어버립니다. 그 이후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대부분의 운동이 결국은 실리주의로 귀착 되었습니다. 싸움의 행태는 매우 격렬하지만 실제의 내용은 자기집단의 이익강화였습니다. 사회적 연대 원칙은 매우 빈약해졌습니다.

(윤종훈) 행태와 가치를 혼동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이명박의 상스러운 말투와 거친 추진력을 많은 사람들이 ‘진보’로 착각합니다. 노동운동도 총파업 투쟁 등 행태는 과격하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이기주의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행태 속에 담긴 가치와 사상, 내용인데도 사람들은 거기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진정한 진보는 복지국가 지향성입니다. 그것 없이 진보를 말하는 것은 사기행위입니다

복지국가의 가치관에서 볼 때, 노무현 정부는 진보는커녕 매우 보수적입니다. ‘06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에서 증세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무척 감동했습니다. 이제 이 양반이 정신 차렸나 보다 하구요. 그런데 한미 FTA를 덜컥 맺어버리는 것을 보고 제가 잠시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인 2003년도에 감세했고 임기 말인 올해에도 감세했습니다. 최근, 4월 임시 국회에서 해외투자펀드 수익에 대한 비과세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복지국가를 향한 지향성에서 더욱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조세정책을 내놓은 것이 노무현 정부입니다. 노 대통령이 2년 동안 감세한 것만 따져도 연 4조원이 날아갔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들먹이며 아동복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감세로 날려버린 연 4조원만 투자해도 우리나라 아동복지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데도 말로만 아동복지를 떠들고 다닙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골프용품에 대한 특소세를 면제 했는데, 명분이 골프채 생산하는 중소기업 살리기입니다. 그런데 실제 국내에서 사용되는 골프채의 90%가 외제라고 합니다. 그렇게 거짓말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부자들의 주머니를 부풀리면서, 앞으로는 증세를 떠들고 뒤로는 감세하고 이렇게 혼란스럽습니다. 내용으로는 철저히 시장주의고, 한나라당하고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인 양 말투만 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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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발간 예정인 '복지국가 혁명'책자를 소개합니다
한국사회의 복지전문가들의 역작입니다
출판기념회 및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창립대회가
7월 4일 오후 7시 국민일보 빌딩 1층에서 열립니다.
많이 오세요..
책의 앞부분의 일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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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혁명 2부
- 미완의 민주화, 결함 있는 민주주의

(문진영) 정치형식적인 면에서 많은 부분이 민주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단순한 정치적 권리의 획득이었을 뿐 시민적 권리나 사회적 권리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민주주의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사회적 권리나 연대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개혁진보 세력이 민주주의의 개념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시민적 권리, 사회적 권리까지 확장하지 못했는가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세금 문제를 봅시다. 민주투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사회복지 증가에는 찬성, 하지만 이를 위한 ‘증세’에는 반대 혹은 주저주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고자 하는 민노당과 열린우리당도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역사적 뿌리는 과거 식민지 시대까지 내려간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았던 나라들, 이들은 오늘날 대부분 선진국인데, 이런 나라들에서는 개개인이 스스로 만든 시민사회와 국가공동체에 대한 헌신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가령 국가를 위해 세금을 내는 경우에도 그것이 당장은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나에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압니다. 국가공동체 의식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우 국가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곧 일본 제국주의 혹은 독재국가에 대한 부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세금을 국가에 빼앗기는 돈이라고 여깁니다. 저도 국가에 의한 공공서비스의 필요성을 믿는 사람입니다만 그런데도 세금 낼 때는 굉장히 아까워요. (웃음).

따라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과거를 복원하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복지국가 혁명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이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상이)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만을 의미하는 정치적 민주화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참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직장에서 40대 후반의 가장이 갑자기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자식들이 중고등학생인데 부인은 가정주부라서 경제 능력이 없습니다. 작은 아파트 20평짜리 가졌지만 가장이 죽고 나니 부인과 그 자식들이 생계가 막연합니다. 절망적입니다. 이런 일이 ‘민주화’된 국가에서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국민 대다수가 이런 일을 일어날까 두려워하며 절망하는 사회가 정말 민주주의 사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복지국가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참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문진영) 슈미트 교수라는 분은 민주주의의 구성요소를 몇 가지로 구분해서 그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결함 있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합니다. 가령 사회복지 지출이 낮은 나라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대부분 행정부의 권한이 너무 강하고 정당과 의회의 힘이 약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가 저소득층의 생활보장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법을 통과시켰는데도 행정부가 그것을 퇴색시키는 시행령을 만들고 또한 그 집행을 가로막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년간의 민주화는 국가체제 전체의 민주화가 아니라 그 일부, 즉 국회와 시민사회의 민주화에 불과할 뿐, 행정부 특히 경제부처를 민주화하는데서 실패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내건 민주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입니다.

혁신경제의 기반인 복지국가

(정승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행정부, 특히 재정경제부와 같은 경제부처의 권력이 붕괴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으며 오히려 민주세력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재정경제부가 주도한 지난 10년간의 이른바 ‘시장개혁’이야말로 바로 국민들의 삶을 이토록 불안하고 절망에 빠뜨린 원인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한미FTA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재정경제부가 주도하고 개혁세력이 일부 후원한 이른바 ‘시장개혁’의 논리는 ‘97년도 경제위기를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경제구조의 배경에는 정부주도형 경제성장이 있다고 보았지요. 또한 기업들이 과거에 내걸었던 “회사를 가족처럼”이라는 구호도 고비용 저효율의 원천이라고 이들은 간주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장개혁 세력은 이제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시장원리를 도입하자, 기업들도 직원을 가차 없이 자를 수 있어야 한다, 능력급제나 연봉제를 도입하고 무능한 40대는 다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모든 ’시장주의적 개혁‘이 민주화 세력의 동의와 후원 하에 진행됐습니다. 당시 무더기로 잘린 사람들이 통닭집, 음식점을 차리니 공급과잉으로 장사가 잘 될 리가 없지요. 많은 이들이 망하고, 그러다가 카드빛, 사채빛으로 무너지고, 그러다가 끝내는 온가족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경우에도 민주화 세력과 시장주의 개혁세력은 관치금융 때문에 금융위기가 터졌으니 관치금융 하지 말라며 은행들을 민영화하고 해외매각하고, 은행도 국가적 목표보다는 수익성을 추구해야 된다고 밀어붙였습니다. 그 결과 은행들은 수익성만 추구하다 보니 안전하게 돈 되는 쪽으로만 대출을 하고 그러니 은행들이 부동산 담보대출을 늘려 요즘 같은 부동산 투기 열풍을 도와주고요.

요즘 은행가면 돈 없는 사람들은 찬밥 취급받습니다. VIP 룸이니 Private Banking이니 해서 소수의 상류층 자산가들만 대접하고 그런 분야로만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시장원리, 경쟁원리의 확산이 바로 ‘시장개혁’의 요체인데, 시장은 원래부터 돈 있는 사람들의 교환 장소이며 돈 없는 사람들은 내쫒기는 곳입니다.

‘98년 이후의 시장개혁이 끊임없이 삶을 위협하고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이에크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에 따르면 불확실성이야말로 혁신의 원천입니다. 불확실하면 사람들은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창조적 파괴를 하려 한다며 시장원리를 옹호한 것이 하이에크류의 경제학자입니다. 그렇지만 시장원리는 모든 것을 유동화시키고 모든 것을 유연하게 만듭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허용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 시켜버렸고 적대적 M&A 허용으로 자본시장을 유연화시켰고 이제는 FTA로 온갖 것을 다 시장원리로 유연화시킵니다.

이렇듯 경제적 삶이 유연화, 유동화되니 어느 것도 고정되지 않고 어디에도 몸과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98년 이후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의 원인은 바로 ‘시장개혁’입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명명된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면화, 즉 선진국 최악의 사회복지를 가진 자본주의 원리의 전면화가 바로 삶의 불안의 원인입니다.

(윤종훈) 시장원리의 전면화, 유연성 원칙의 전면화가 초래한 악영향을 지적하고 계신데,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불확실성이 마치 ‘혁신’의 원천인양 이야기하는 하이에크식 자유주의 경제사상을 비판하셨는데, 하지만 우리가 마치 혁신 자체를 부정하거나 시장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이에크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혁신을 위해서는 유연성과 불확실성만으로는 않되고 안정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오늘날 OECD와 다보스 포럼도 세계 최고의 혁신능력을 인정하는 덴마크입니다. 덴마크는 대표적인 복지국가인데 그럼에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과감히 받아들였습니다. 기업주가 언제든지 노동자를 해고할 있는 정리해고가 자유롭고 또한 노동자도 실직상태에서 다시 재취업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러한 해고를 인생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휴식기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복지국가가 그 노동자에게 노동시장에 요구하는 숙련도나 지식을 갖출 때까지 2년이고 3년이고 실업수당으로 먹고 살게 해주고, 배울 수 있게 해주니까요. 기업의 필요에 따라 구조조정이 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쉽게 수용하고 이를 일종의 기회로 간주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화와 개방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혁신원리와 경쟁원리는 장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를 작동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복지국가 혁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불안한 시스템 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0년간의 개혁진보 세력을 반성하자면,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운동도 이익집단화되고 있습니다. 시장주의, 주주자본주의, 이런 것들이 진보고 개혁인 것으로 착각하다보니 아직도 새로운 가치를 못 찾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과거 민주화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이제 새로운 혁명적 관점에서의 한국사회의 미래 100년을 제시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복지국가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시 뭉치지 않으면 막강한 시장주의 세력의 힘을 막을 수 없으며 국민들의 불안은 계속될 것입니다.

(정승일) 물론 저도 하이에크의 생각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혁신능력을 가지려면 먼저 적절한 교육과 교양을 쌓아야 합니다. 하이에크 자신도 높은 교육을 받았던 유태인이었습니다. 높은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는 뭔가 집에 돈이 많아 ‘안정된 삶’을 누렸다는 것인데, 안정된 삶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혁신을 이야기하는 하에에크류, 공병호 류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혁신과 창조는 인간이 안정된 삶을 누리며 스스로 학습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낄 때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주거가 안정되고 노후가 보장되어야 마음이 안정되어 책을 읽을 것입니다. 당장 돈이 없어 1달 뒤 생계를 걱정하는 대학생은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배규식) 정부는 98년도 이후에 시장개혁에서 지식기반 경제니 혁신주도형 경제니 하는 것을 내걸었는데, 지금처럼 일부 소수만 안정된 삶을 누리는 사회구조에서는 소수의 선발된 핵심인력들만 혁신과 지식기반을 위한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혁신주도형 경제, 지식기반 경제에서 배제됩니다. 선진국 수준의 사회보장과 주거, 의료, 노후보장을 하지 않는 한, 선진국형의 혁신경제도 만들 수 없습니다.

(이태수) 우리는 2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이제야 복지를 확충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선진국 중 사회복지를 가장 적게 한다는 미국과 일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유럽 국들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이상구) 심장이 수축해서 만들어 내는 혈압은 적정할 경우 구석구석 혈액을 보내는 좋은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혈압이 너무 높으면 혈관이 터져버리고 맙니다. 경쟁압력과 시장압력은 너무 심할 경우 사회를 폭발적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경쟁압력과 함께 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견실한 사회복지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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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발간 예정인 '복지국가 혁명'책자를 소개합니다
한국사회의 복지전문가들의 역작입니다
출판기념회 및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창립대회가
7월 4일 오후 7시 국민일보 빌딩 1층에서 열립니다.
많이 오세요..
책의 앞부분의 일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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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혁명 종합 토론

1부 : 삶의 불안, 그 심각성

(이상구) 오늘 논의의 시작을 이태수 선생님께서 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생활에서 느끼는 불안의 현황을 간단하게 소개를 하시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를 논의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이태수) 요즘 국민들은 너도 나도 삶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연초에 한 유력 일간신문에서 의식조사를 했는데 우리 국민들은 5대 걱정거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택 걱정, 일자리 걱정, 노후 걱정, 자식 교육 걱정, 그리고 북한핵 걱정, 이렇게 다섯 가지였습니다. 삶의 기본이 되는 주거, 취업, 노후, 그리고 교육 - 여기에는 자녀양육까지 포함된다고 보는데 - 등의 문제에서 일반 사람들이 심한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과제들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는 의식조사가 아닌 객관적인 수치로도 나타납니다. 통계를 보면 도시근로자의 가계지출에서 교육과 주거, 이 두 가지에만 나가는 돈이 총소득의 30%가 넘는다고 합니다. 더구나 10년 전인 93년도에 비해 5%포인트 이상이 상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본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쓰는 소득지출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은 만약 일자리를 잃는 등의 위기적 상황이 온다면 곧장 기본생활이 유지되지 못하는, 즉 온 가족이 삶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적 삶의 근본이 되는 주거와 교육, 노후, 의료 등의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 즉 ‘시장’에서의 구매로 해결해야하는 상황이 바로 이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구) 개발독재 시기였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도 주거와 교육, 노후 등에서 일반 사람들이 걱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이 빨랐고 일자리 창출도 많았으며 실질 국민소득도 빨리 늘었으므로 당장은 힘들더라도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면 조만간 아파트도 장만하고 애들 대학도 보내는 꿈이 있었습니다. 박정희에서 노태우에 이르는 군부정권이 내걸었던 구호처럼, 국민 소득 1천 달러를 넘고 1만 달러가 되면 나라도 선진국이 되고 서민들도 선진국 국민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이란 것을 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성재) 또한 그 시절에는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덜 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지금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누구는 몇 평짜리 아파트, 몇 단지에 살고 자가용이 어느 급”인지를 말하면서 계급이 갈라집니다.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고 “부자 아빠와 돈 없는 아빠”라는 차이와 차별을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자랍니다. 그야말로 계급사회가 등장했습니다.

(이상구) 그래도 만약 이 ‘가난한 계급’이 ‘부자 계급’으로 상승할 ‘희망’이 있다면, 사람들은 크게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경험으로 이제 사람들은 그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노무현 정부가 국민 소득 2만 달러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외쳐도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에서 별로 위안을 받지 않는 겁니다.

1990년대의 ‘민주화’ 시대와 동시에 도래한 ‘시장화’, ‘세계화’ 시대에 개개인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구매’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집을 장만하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자식 교육을 위해서도 학원비와 높은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국민연금을 못믿으니 노후를 위해 따로 민간보험을 들어야 하고, 건강보험으로 부족하니 암보험, 상해보험에 들어야 합니다.

2007년 1사분기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이 370만원이라고 하지만, 집 장만, 자식교육, 노후연금, 각종 보험료 등에 지출되는 것을 뺀 가처분 소득만을 볼 경우, 한 달에 한 가족이 넉넉하게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비정규직이니 명예퇴직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일자리 불안을 생각할 때 그나마 그 알량한 350만원의 소득조차 앞날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윤종훈) 공인회계사인 저 역시 생활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직업을 가졌는데도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무슨 까닭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안정된 삶을 누리는 상류계층에 들어가지 못하면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더구나 내 세대보다 내 자식 세대가 더 절망적일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몽상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느낌이라고 생각됩니다.

전에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공부만 잘하면 출셋길이 열려있었는데 요즘은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10억 만들기, 13억 만들기 열풍과 같이 재테크로 성공해서 요행히도 안정된 상류계급으로 올라가지 않는 한 내 후손들도 계속적으로 불행의 나락에 빠질지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배규식)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과거에는 나름대로 가족이 도와주고 친구들이 도와줬지만 이제는 그런 공동체적 삶이 주는 안정성이 없어졌습니다. 1998년 이후 ‘시장원리’가 모든 삶의 영역에 관철됨에 따라 과거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예측 가능성’이 없어져 심리적 안정감이 없어진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기업이나 조직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데, 더구나 갑자기 병들거나 할 경우에도 대책 없이 어려움에 빠져야 하는 상황이 큰 부담인 것 같습니다.

(이상이) 선진국 수준으로 시장원리, 경쟁원리가 확산됨에 따라 삶 자체의 불확실성이 커졌는데도 선진국 수준의 복지국가가 삶의 안전망으로 제공되지 않으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감이 심화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태수) 그렇지요. 과거에는 경제성장 초기에 따른 일자리 팽창 효과와 연복지(緣福祉)라고 하는 혈연․지연․학연에 따른 유대망이 있어 개인의 삶에 대한 불안정성이 조금 덜 했었는데 이제는 전 지구적 차원의 세계화와 우리 사회 내부의 시장화 추세가 강해지는데도 복지제도는 그에 대응하여 발전하지 못한 괴리가 오늘날 우리 사회 전체에 드리워진 삶의 불안정의 근본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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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훈 회계사의 글입니다...
중2 아이를 둔 제입장에서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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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비 낼 건가, 차라리 세금을 낼 건가
[세금논쟁 ⑦] 여성 고용률이 높은 국가가 출산율도 높다



'출산파업'이 새로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저출산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연구보고서는 결혼과 자녀에 대한 여성의 가치관 변화를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들었다. 즉, 여성들의 자기성취 욕구가 높아지면서 결혼이나 자녀가 인생에 있어서 선택사항으로 그 지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여성들의 자기성취 욕구는 선진국이 오히려 더 높을 텐데, 왜 우리나라만 유독 저출산 문제가 이토록 심각한 것일까?

노동연구원의 정기간행물인 <노동리뷰>(2005년 4월)가 '여성 고용률이 높은 국가가 출산율도 높다'는 흥미로운 통계(2002년 기준)를 발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여성고용률은 대부분 80%가 넘는데도 출산율이 1.8명에 가까워 OECD 국가 중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여성고용률이 53~54%로 최저수준이고 출산율은 1.2명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여성고용률은 57.7% 정도이고 출산율은 1.17명이다.

이 통계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애를 안 낳으려 할 것이라는 통념을 뒤집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들의 자기성취 욕구가 저출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성취 욕구를 방해하는 사회구조가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가정이 책임져야 하므로, 이는 여성에게 가정과 자아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진다면,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아성취와 가정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성 고용률 높으면 출산율도 높다

우선, 보육에 대하여 보자.

최근에 들어 만 5세아 및 저소득층에 대한 보육료 지원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영리목적의 민간보육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보육정책은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어린이집 등에서 꿀꿀이죽 사건이나 아동학대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민간보육시설 의존적인 보육정책 때문이다. 돈 벌자고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현금 지원을 하고 제대로 감독조차 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리목적의 보육시설이 시설수에서는 전체의 85%, 수용아동수에서는 70%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스웨덴의 경우 유아학교의 87%를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나머지도 부모가 협동 운영하는 등 비영리시설이다. 미국의 경우도 영리목적의 보육시설은 35%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보육률은 30%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영유아의 70%는 그 알량한 보육시설마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육료 지원 규모를 늘려보았자 30%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정작 보육시설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70%의 가정은 어떻게 돌볼 것인가?

공공 보육시설을 늘려 보육률을 높이는데 보육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2004년에 필자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며칠 머무는 동안 20~30명 규모의 소규모 보육시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여성들이 출근하는 길에 동네 구멍가게 들르듯이 보육시설에 들러 아이를 맡겨놓고 출근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러니, 80%를 넘는 여성고용률에도 1.8명의 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추계한 결과, 0~5세 영유아 보육율을 70%로 하고 정부의 보육비용 부담률을 80%로 할 경우 약 5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영유아 보육률 70% 위해선 5조원 소요... 재원은?

다음으로 교육에 대하여 보자.

최근 들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자주 나가면서 저절로 교육과 학력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즈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모든 졸업생은 대학이란 한가지 잣대로 ① 일류대학에 들어간 사람, ②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간 사람, ③ 대학도 못간 사람 등 세부류로 나뉘었다. 그리고, ①은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이고, ③은 밑바닥 인생을 살 것이라고 단정을 했다.

40대 중반이 되어 친구들을 만나보니 당시의 그 기준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①에 속한 친구들의 대부분은 그럴듯한 회사의 간부가 되었다. 그런데, 사오정이 되어 하루하루가 눈치 보인다고 한다. '지금 그만두면 특별한 기술도 없는데 앞으로 뭐해 먹고 사나?' 반면, ③에 속한 친구들 중 상당수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특정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확고히 하여 인정받고 있었다.

동창회 1차 모임이 끝나고 2차를 가자고 하는 경우에도 ①은 뻔한 지갑 사정에 망설이지만, ③은 자기가 산다며 앞장서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지 돈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무기로 험한 세상을 헤쳐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한 사람의 당당함과 대학 간판 하나로 큰 회사에 들어가 남다른 재능 없이 그럭저럭 살아온 사람의 소심함이 그대로 비교되는 순간이다. 앞으로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조차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력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에 괴리가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니, 지식기반경제가 뿌리가 내릴 미래에는 더욱 더 그러할텐데, 공교육은 여전히 전통적 학문중심적 학교모델을 고집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개혁에 관한 논의들이 서로 난맥상을 보이면서 제대로 진전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붕괴와 사교육비 문제를 학교의 전통적인 교과교육력을 회복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한 한계 때문이다. 전통적인 학문중심교육은 엘리트교육이며, 엘리트교육은 필연적으로 서열화를 수반한다.

서열화를 본질로 하는 학문중심의 엘리트교육을 공교육의 내용으로 하면서도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평준화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으니, 하향평준화 및 특목고 설립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만의 개성과 독특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사회에서는 써먹지도 않을 미적분 풀이 능력을 기준으로 서열화하면서 어떻게 평등주의적 가치를 공교육에 넣겠다는 것인가?

획일적이고 학문 중심적인 학력을 목표로 한 엘리트교육은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이해시켜줄 선생을 많은 돈을 주고 고용하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학교를 학원화하는 것뿐이다.

공교육 서열화시키고 싶거든 모든 교사 비정규직으로 만들라

▲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학부모의 공교육비 부담을 줄여준다고 해도 지금의 학문중심적 엘리트 교육체계에서는 사교육비 부담이 여전히 남는다. 사진은 서울 강남의 학원가.
ⓒ 연합뉴스 한상균
학교 교사를 모두 비정규직 강사로 만들어라. 그리고, 한 달에 두세 번 시험을 봐서 학생들 성적이 안 오르면 2주 전에 통보하여 해고하라. 그러면, 선생들이 죽기 살기로 학생들을 공부시킬 것이고, 학생들은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해결책인가?

공교육을 평생학습 시스템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 평생학습은 배우는 나이와 배우는 장소, 배우는 내용에 대하여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학문 중심적 학력보다는 실제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그 능력이 학교에서 취득되었는지, 언제 취득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평생학습 시스템에서 학교는 어떻게 변화하나?

우선, 개별 학습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경로가 다양해진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식의 단선형 학교제도의 계단을 따르도록 되었는데, 학습자의 요구에 따라 다른 교육경로를 선택할 수가 있다. 즉 폐쇄형 교육시스템에서 개방형 교육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개방형 교육시스템을 위하여는 ① 학교 밖의 다양한 학습자원들과 연계된 수업 체제 도입, ② 단계별 학년별로 표준화된 학력인증제 도입, ③ 교육계좌제 도입 방안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게 학습자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사례를 통하여 보자.

홍길동은 중3 학생이다. 그는 요리에 남다른 관심과 소질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요리사가 되는게 꿈이다. 학교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이 각 수준별로 개설이 되어 있다. 수준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 교실에 여러 학년이 섞여 있기도 한다.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기 위하여 얻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적이 각 과목별로 정해져 있다(표준화된 학력인증제).

홍길동은 이미 모든 과목에서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성적은 확보하였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해 학교와 연계된 요리학원에 다니기로 하였다. 다만, 미래를 위하여 영어와 국어는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심화학습반 수업을 듣기로 하였다. 그리고, 체육으로 테니스를 배우기로 하였다. 홍길동은 영어, 국어, 테니스를 배우는 시간 외에는 요리학원에서 실습과 이론 공부를 한다.

교육예산 GDP 6%면 고교 무상, 대학등록금 77% 지원 가능

홍길동의 담임은 요리학원과 연락을 하여 홍길동의 요리공부 진척도를 체크하고 홍길동의 교육계좌에 기입한다. 이 교육계좌는 홍길동을 계속 따라 다닐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여야 모두 GDP 6% 교육 예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2004년의 교육 예산은 4.2% 수준이었다. 금액으로는 공약보다 13조원 부족한 금액이다. 공약대로 13조원을 추가로 확보할 경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대학등록금의 77%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민노당 분석자료). 그러나, 이와 같은 예산을 투입하여 학부모의 공교육비 부담을 줄여준다고 해도 지금의 학문중심적 엘리트 교육체계에서는 사교육비 부담이 여전히 남는다.

향후 교육개혁은 현재와 같은 폐쇄적인 단선형 학교제도를 평생교육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학교에 추가적인 예산을 배정하여 양적인 개선을 이루기보다 새로운 대안 학교의 모델을 세우는데 집중 투자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 아이를 사교육비 부담 없이 지식기반 경제에 맞는 인재로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개혁 방향이 제시된다면, 아이 낳기를 꺼릴 이유가 없으며 세금을 좀 더 내는데 저항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학원비로 내나 세금으로 내나 그게 그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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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가족사랑 2007/04/24 01:11
장애인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 인권토론회
‘속도’와 ‘경쟁’이 난무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장애인운동 진단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을 끊임없는 ‘속도’와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는다. 단 시간 내에 더 많은 부가가치, 자본을 생산하는 자가 사회가 일컫는 소위 ‘능력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어떠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17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장애운동의 흐름과 전망’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한상희(건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현 자본주의 사회는 얼마나 많은 생산을,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생산성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있다. 생산성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장애인이 인권을 보장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운동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토론회는 이성재(연구소) 이사의 ‘장애우권익운동이 나아갈 길’ 주제발제를 바탕으로 박종운(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추진연대) 법제위원장,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공동대표,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의지정토론으로 이어졌다.

장애인 예산, OECD 평균 2.73%, 한국은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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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재 연구소 이사. ⓒ소연 기자  

주제발제에 나선 이성재 이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고 하지,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는다”며 한국의 GDP는 OECD 30개국 중 23위에 불과하지만 장애인 예산의 경우 OECD 평균 2,73%(GDP 대비)에 턱없이 모자란 0.28%(07년 예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성재 이사는 “한국은 국가 경쟁력과 비례해 국민들의 삶과 질이 나아지는 나라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성재 이사는 “모두 힘 모아 나라를 세웠는데, 왜 부의 상당 부분은 일부에만 몰리는가” 문제제기 하며 그 원인의 첫 번째로 정책 중심의 정당이 부재한, 지역주의와 연고주의로 얼룩진 정치계 문제를 꼽았다.

두 번째로 꼽은 것은 공무원 제도인데, 이성재 이사는 “한번 되면 쫓겨나기 어렵고, 국가의 일을 하는 공무원으로서 처음에 열정을 가지고 덤빈 사람도 10년이 지나면 선배들의 부패와 나태, 무소신을 배우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며 “이것이 공무원 시스템의 현 주소”라고 지적했다. 이성재 이사가 세 번째로 제기한 문제는 지식교육만 있고, 민주주의 교육이 없는 한국 교육의 실태였다.

이러한 현 한국 상황에서 장애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스웨덴과 같이 장애담당 공무원은 장애교육을 받게 하고, 장애 관련 정책을 제정할 때 장애 단체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차별의 요소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장애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운동계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을 바탕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 당사자주의 ≠ 장애인 당사자 주도의 권리 운동”

박경석 공동대표는 기존에 쓰이던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비판하고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할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내놓았다.


 
▲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 ⓒ 소연 기자  

박경석 공동대표는 “DPI가 만든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자조와 자기결정을 달성하려는 장애인 당사자 주도의 발전된 권리운동’으로 장애인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보던 기존의 비장애 전문가 중심의 패러다임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인 당사자주의 패러다임은 장애인 대다수의 이익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 단체의 상층부가 장애인 복지전달 체계에서 비장애 복지 전문가로부터 권력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의 정책적 파트너가 되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외치는 장애계 세력들은 장애대중들을 또 다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형국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이 장애인의 마음을 더 잘 알기 때문에 권력과 야합하여 장애인을 더욱 통제하고 억압, 착취하는 완장 낀 골목대장으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애인운동은 “목표와 정체성을 정확하게 하고 장애인 당사자주의라는 것으로 장애인은 모두가 하나가 아니며 장애인 단체가 하나로 단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진보적 장애인운동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는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된’ 관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단체, 빈곤 문제에 적극적 개입 기대


 
▲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소연 기자  

“장애인 대부분이 비 노동자이며, 빈곤 계층인데, 장애인 문제에서 빈민의 계급성을 뺀다면 장애인 운동이 가능할까?”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장애운동에 빈곤문제가 주요한 사안일진데 장애운동계가 빈곤운동에 연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류정순 소장은 “정부는 2004년 최저생계비 계측 시에 2006년부터 장애인가산금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다”며 “일을 해서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수급권이 박탈돼 영구임대주택, 입주주택, 주거급여, 임대료보조 등 20여 가지 혜택이 박탈되고 장애수당마저 줄어들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가구의 최저 생계비가 비장애 가구보다 평균 20만원 이상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시행 예정인 근로장려세제(EITC)에는 장애인이 배제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대를 하고자 했던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수의 장애인 포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동 전환 필요


 
▲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 소연 기자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박래군 활동가는 장차법을 예로 들며 장애인운동은 사회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장차법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성숙되었다기보다 장차법 내용을 구체적으로 모르는, 무관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운동이 비장애 진보운동과 같이 관성과 경직성에 벗어나지 못하고 대중과 유리되어가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장애인 운동이 제도권 내로 집입 할 때 빚어지게 될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며, 당사자주의에 대한 입장정리, 비합법투쟁의 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운동방식, 다수의 장애 대중을 포괄할 수 있는 운동 전개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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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
사람을 꽃으로도 때리면 안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사람이 아니지요...
정희진(여성학 강사)가 쓴 책 제목이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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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2007년의 출발이 우울합니다. 즐겁지 않은 ‘폭력’ 문제를 생각하게 된 탓일 겁니다. 이찬·이민영 연예인 커플의 파경을 불러온 ‘폭력’ 사태가 고민을 던졌습니다. 두 사람은 한때 인터넷 포털의 인기 기사 상위 순위 5~6개를 독차지할 정도로 화제 그 자체였습니다.


△ (사진/ 법무법인 백상 제공)

먼저 민망스럽습니다. 대중이 품는 고상한 환상과는 거리가 멀게 양쪽은 적나라한 공방을 벌입니다. 한쪽이 “의견 마찰로 서로 따귀를 7~8차례 주고받았을 뿐 절대 배를 차거나 때려서 유산시킨 일이 없다”고 주장하면, 상대는 “수십 차례 얼굴과 머리를 구타했고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운전을 하다 발로 차 밖으로 내동댕이쳤다”고 반박합니다. 여기에다 폭력의 배경을 놓고 갈 데까지 간 물신주의까지 가세하면서 요지경 양상마저 보여줍니다. 33평 전세 아파트는 작으니 큰 아파트를 마련하라거나, 임신을 해서 CF를 찍지 못했으니 5억원을 피해 보상하겠다는 각서를 써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진실게임’에다, “맞아도 싸네”라는 일각의 동정론이 겹쳐지면서 호기심은 증폭되지만, 그럴수록 사태의 본질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약자의 자기방어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 말입니다.

기실 우리는 워낙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 탓에, 폭력에 무감각하거나 심지어 ‘관대’하기까지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혹은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아이를,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일은 너무 쉽게 목격됩니다. 지난해 한국여성상담센터가 서울 시내 기혼 남녀 818명(여성 552명, 남성 2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성의 33.1%가 부부 갈등 때 폭력을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세 명 가운데 한 명꼴입니다.

이런 ‘일상화한 폭력’의 내면에는 ‘맞을 만한 짓’이라는 그릇된 통념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잘못을 교정하는 도구로서 ‘폭력론’입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가해자 남편들은 하나같이 아내를 때린 것이 아내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아내가 잘못을 하면 남편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가정폭력의 뿌리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폭력은 결코 의사소통 방식이 아닙니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길을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공격 행위일 뿐입니다. ‘맞을 만하다’는 가해자의 논리는, 뒤집어보면 그 자신도 언제든지 ‘맞을 짓을 했다’는 피해자의 처지로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맞을 만한 짓이란 없습니다.

지난해 8월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한 고교의 체벌 문제를 성토하는 청소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 시위를 보도한 기사를 읽다가 청소년들의 외침에 너무나 부끄러워진 적이 있습니다(저도 ‘가르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찬·이민영 두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그 외침은 이렇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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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