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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민주당 비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최근 김호기 교수가 발제한 '기회, 성장, 정의'의 가치에 대한
사회디자인 연구소 김대호 소장님의 날카로운 비평입니다.
진보적 담론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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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 진보적 국가 개혁 담론 ‘평가’를 시작하며


국가 개혁 담론, 특히 총론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괜찮은 담론이 나오면 높이 평가하여 빨리 확산 되게 하고, 후진 담론이 나오면 날카로운 평가를 통해 가능한 빨리 퇴출 되게 해야 한다. 괜찮은 담론은 그 지적 기여와 역사적 의의가 무엇인지, 한계와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도 명확히 해 주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국가 개혁 담론(총론)은 세계관, 가치관, 시대정신, 국가비전, 주요 정책기조를 집약한 종합 담론으로 보통 정치사상. 이념으로 불린다. 투표를 하거나 신문을 선택 할 때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뭔가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나름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있고, 이를 기준으로 정치적 판단과 선택을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판이나 정치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반영한 국가 개혁 담론, 곧 사상, 이념 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 이념적 수준의 논의에 대해서는 의외로 품평이 적다. 그것은 이 논의가 아무래도 이해관계자들의 손익이 바로 계량되는 구체적인 법, 제도, 정책이 아니라 다소 막연한 정신과 기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분화, 전문화 되고, 아카데미즘에 경도된 한국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시시비비를 하기에는 너무 종합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품평 빈곤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담론의 소비자이자 판관인 정치와 언론의 후진성 일 것이다. 담론품질의 관건인 상벌(평가보상)을 이들이 주도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 보수, 중도 진영 공히 질 낮은 국가 개혁 담론이 너무나 오래도록, 너무나 자유롭게 활개 치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질 좋은 담론들의 확산 속도나 진화 속도는 더디기 짝이 없어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수는 현상 유지와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기에 국가 개혁 담론이 없어도 이른바 ‘장사’에 지장을 덜 받지만, 진보와 중도는 그렇지 않다. 진보는 본래 획기적이고 목적의식적인 국가와 사회 개혁을 추구하고, 중도는 본래 모순적으로 보이는 가치, 정책을 결합하는 묘수를 부리기 때문이다.


사상과 이념을 다룬 책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책은 서평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사상과 이념이나 국가 개혁 담론(총론)을 다룬 책은 적기도 하지만, 그 서평은 그렇게 엄격하지 않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담론의 핵심 소비자이자 판관인 정치인이나 정치권 주변 인사들이 펜을 잘 잡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 같지 않은 소리는 조용히 외면해버리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정치의 미덕이자 노련함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로 인해 시대착오적인 담론(특히 진보담론)들이 거침없이 대중을 유린하고 있다.


담론은 본래 비판, 반비판과 실천을 통해 검증되고 발전된다. 그런데 ‘선수급’의 비판과 반비판은 매우 인색하고, 국가 개혁 담론의 성격상 가설-검증 사이클이 매우 길기 때문에 발전이 몹시 더디다. 이 와중에 선진국의 대가들과 정당들이 생산한 담론의 단순 수입상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활개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그래도 짧은 서평의 대상이라도 되지만, 논문이나 토론회 발제문이나 칼럼이나 연설문은 진지한 평론의 대상에 들지 않았다. 이에 사회디자인연구소 부터라도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는 국가 개혁 담론(총론)에 대한 진지한 품평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상, 이념에 관한 한 소비자 운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1. 김호기 발제문 요지


1) 민주당의 선 자리 진단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는 주요 매체에서 진보를 대표하는 중진급(이젠 더 이상 소장학자가 아니다) 학자 중의 한 명으로 소개된다. 민주정책연구원이 민주당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지난 9월 17일 조찬을 겸해 마련한 1차 민주정책포럼 -“논객이 민주당을 논한다”-에서 첫 번째로 그를 모신 것은 김호기 교수의 이런 위상 때문 일 것이다.


김호기 교수가 발표한 글의 제목은 ‘민주당의 선 자리, 갈 길’이다.

김 교수는 민주당의 선 자리, 곧 현실(문제점)을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누어 정리했다.

첫째, 비전․정책․정체성의 혼돈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김 교수의 결론은 애매한 중도개혁주의에서 벗어나 진보적 중도주의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주요 강령들을 간략히 비교한 후 “현재의 (민주당)강령들은, 외교․안보 영역을 제외하면”, (시장의 활력과 정부의 개입을 생산적으로 결합하는 혼합경제를 강조함으로써 진보주의에서 중도주의로 이동해 온) 서유럽 신사회민주주의(‘제3의 길’)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다.


김 교수의 “제3의 길”의 진화(혹은 변화)에 대한 평가는 좀 부정적이다. “제3의 길은 분배를 중시하는 전통적 복지국가에서 성장과 분배의 결합, 교육 혁신과 일자리 창출, 사회투자를 강조하는 적극적 복지국가로의 변화를 모색해 왔지만, 갈수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경도됨으로써 최근 사회 양극화가 오히려 강화되는 결과를 낳아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제3의 길”노선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의 경도를 진보주의가 중도주의로 경도된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제3의 길” 노선의 신통찮은 성과와 더불어, 김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여론 조사 결과이다. 요약하면 한국의 여론(이념) 지형은 총론, 즉 자신의 주관적 이념 성향으로 분류하면 중도의 비중이 높지만 개별 이슈에 대한 태도로 분류하면 중도의 비중이 작고, 진보나 보수의 비중이 늘어나는 쌍봉낙타 구조라는 것이다.


둘째, 리더십의 약화이다.

김 교수가 주문하는 리더십을 요약하면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고, 정치적,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 즉 정치적 감각, 정책적 콘텐츠, 대중적 호소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들 사이들의 경쟁 및 협력, 그리고 차세대 리더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을 강조하였다.


셋째, 거버넌스의 빈곤이다.

김 교수가 지적하는 것은 당의 지배구조라기 보다는 진보적 시민사회와 민주당 간의 네트워크와 신뢰의 상실이다. 한마디로 민주당의 시민사회에서의 고립이다.


2) 민주당의 갈 길 제안


이는 새로운 비전으로서 진보적 중도주의를 채택하려는 것, 리더십을 복원하고, 거버넌스를 강화하라는 것, 보수정당의 욕망의 정치에 맞서서 민주당식 생활정치를 꾸준히 모색, 추진하라는 것 등이다.


 김 교수가 민주당의 갈 길로 제안하는 “진보적 중도주의”란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중도적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유시장 경제’가 아니라 ‘조정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또는 조정시장 경제에 기반을 두어 자유시장 경제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기획”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중도와 진보의 다른 점, 진보적 가치의 핵심을 “사회 불평등 해소와 공공성 제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더 많은 배려 요청”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중도적 전략의 핵심을 구성하는 ‘조정시장 경제 모델’(Peter Hall and David Soskice, 2001)을 인용하여 정식화 했는데, 이는 한마디로 일본, 독일, 스웨덴에서 채택한 경제 모델이다. 반면에 자유시장경제 모델 국으로 분류된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이다. 조정 시장 경제 모델의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노사관계에서는 “기업과 피고용인의 협력과 임금 조절이 가능”하며, “공동결정을 통한 합의적 의사 결정”을 주요하게 채택한다는 것이다. 기업지배구조에서는 (기업 정보 공개에 입각한 시장에 의한 규율이 아니라-필자 주) ‘평판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한 장기적 금융지원’을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원래 은행 중심 혹은 관계지향 금융시스템으로 정식화 되어 있는데, 될 만한 사업에 대해 기업과 금융의 장기 우호, 협조적 관계가 강점이다)  


김 교수는 새로운 진보적 중도주의의 핵심 가치를 3가지로 정식화 하였다.

‘더 많은 성장(growth), 더 많은 기회(opportunity), 더 많은 정의(justice)’가 그것이다. 김 교수는 (호남을 기반으로 성장을 중시하는)중도 그룹에게는 성장으로 호소하고,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개혁에 무게 중심을 두는) 온건진보 그룹에게는 정의로 호소하며, (진보적 가치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가 주요하게 포함되는) 제3 그룹에게는 기회로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진보적 중도주의는 “새로운 성장, 더 많은 기회, 질 높은 정의’를 통해 좋은 사회(good society)를 모색하려는 정치적 기획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긍정적 평가


김 교수의 글이 진보 정치 이념사(?)에서 가지는 의의는 크게 다섯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첫째, ‘진보적 중도주의’라는 개념을 만들고, 성장, 기회, 정의라는 3대 핵심 가치를 정식화 한 것이다.


둘째, 민주당의 지지층을 호남 기반 중도그룹, 개혁 지향적 온건진보 그룹, 진보적 제3 그룹으로 삼분하고 이를 각각 성장, 정의, 기회라는 가치로 대응시킨 것이다. (필자가 과문 할 수도 있으니 혹시 김 교수 이전에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는지 알려주면 시정하겠다)


셋째, 그 동안 진보가 그리 중시하지 않던 성장과 정의라는 가치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사실 그 동안 한국 진보가 표방하거나 추구하는 핵심 가치에는 ‘더 많은 성장’은 빠져있었다. 환경.생태(지속가능한 지구)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 일각에서는 더 높은 소득, 더 많은 물질 문명의 혜택으로 상징되는 성장 자체에 의문을 표해왔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진보 일각에서는 ‘차별 없는 성장’(정동영)이라는 구호에서 보듯이 성장의 그늘(과실의 편중과 양극화)을 주로 문제 삼아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더 많은 성장’을 진보(진보적 중도주의)의 핵심가치로 삼은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한편 정의(justice)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불의나 불평등의 해소를 의미하기에 진보적 가치의 핵심 중의 핵심이었으나,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정의사회 구현, 선진조국 창조)이 ‘정의’라는 이름을 버려놔서인지 한국 현실 정치판에서는 좀체 사용되지 않은 가치였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정의(연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이 주요한 시민사회단체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온 데서 보듯이 진보나 중도 정치세력과  그리 친화력이 없는 가치가 아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진보의 전통적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간과되어 온 정의라는 가치를 복원시켰다.


국가의 본령을 따져 묻는다면, 정의는 안보와 더불어 국가의 양대 사명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공정(기회)과 공평(지속가능한 발전 전략, 복지), 민주주의 등 진보의 핵심 가치를 다 담고 있다. 정치세력은 정의를 핵심가치로 움켜쥘 수도 있고, 그 하위 요소인, 법 앞의 평등(특권 타파), 기회의 평등, 법치주의, 민주주의, 복지, 연대(공동체) 등을 핵심가치로 움켜쥘 수도 있다. 혹은 이 가치의 결과인 성장을 움켜쥘 수도 있다. 선택의 기준은 국민들의 절절한 요구와 기대를 잘 집약하느냐 여부, 극심한 고통과 불만의 구조와 근원을 잘 설명하느냐 여부이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최상위 가치가 ‘행복’ 혹은 ‘해방(자유)’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치세력의 중심 가치(상품)로 되지 않는 것은 이들이 현실의 고통과 불만이나 모순과 부조리의 구조와 근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의 필요조건이 ‘성장’ 혹은 ‘풍요’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정치세력들이 중심가치로 움켜쥐지 않는 것은, 대개 ‘성장’ 국가 전체의 부를 의미하기에 개인에게 별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을 강조하지 않고, 개인이 피부로 체감하고, 감동 할 수 있는 ‘기회’를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보수 정치세력과 진보 정치세력이 공히 ‘성장’이라는 가치를 주요한 가치로 움켜쥐려는 것은 오랜 고도성장의 역사가 빚어낸 한국인 특유의 열망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복지는 ‘번 것을 나눠먹는 것, 쉬운 것, 무능한 세력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반해, 성장은 ‘더 벌어오는 것, 어려운 것, 유능한 세력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복지가 집권을 도모하는 진보정치세력의 중심가치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으로부터 수입한 징후가 역력하지만 어쨌든 21세기 한국 진보의 대표 상품이 될 만한 ‘기회’라는 가치를 다시금 부각시켰다. 사실 기회는 1990년대 이래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이 특별히 중시해 온 가치이다. 김 교수도 전자가 추구한 핵심 가치를 ‘기회, 책임, 공동체’로 요약했고, 후자의 그것은 ‘기회, 책임, 공동체, 동등한 가치’로 요약했다. 기회는 오바마에 의해서 미국 독립 이래 미국을 다른 나라와 구분지어 온 미국적 가치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기회는 경쟁 기회, 조건 혹은 출발선의 평등을 의미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래 진보가 전통적으로 중시해 온 평등 가치는 오랫동안 법 앞의 평등(신분 제도 타파=특권 불인정, 보통선거제도 등)이었다. 그런데 이 가치는 거의 실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 정치세력들은 이를 경쟁의 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으로 상향 발전시켰다. 이는 경쟁 참여자의 넓은 저변과 인간의 지적 능력이 경제의 성장과 발전의 관건으로 공인 되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확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한, 보수나 진보가 공히 자신의 전매특허로 욕심 낼만 한 가치이다. 어떻게 보면 보수가 선진화를 선점했다면(진보는 아쉽게 놓쳤다), 진보는 기회라는 가치를 선점했다. 아직 민주화, 복지, 남북 화해협력만큼 진보의 대표 상품으로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의 경제. 사회 구조를 뜯어보면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와 비기득권자의 기회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관건이자, 대중적 호소력이 강한 가치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중도주의로 이름을 붙이든 진보적 자유주의로 이름 붙이든 3대 핵심 가치의 하나로 ‘기회’를 잡은 것은 참으로 잘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하나만 잡아야 한다면 나 같으면 기회를 잡을 것이다.


다섯째, 민주당의 문제점으로 거버넌스 빈곤을 든 것이다. 비전.정책.정체성 혼돈, 리더십 약화는 대부분의 논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해 왔다. 하지만 거버넌스의 빈곤을 든 것은 김 교수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출범 이후, 이념, 정서, 조직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친화력이 높던 진보적 시민사회 및 진보적 직능집단과 관계 약화를 지적한 사람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거버넌스 빈곤으로 표현한 것은 김 교수가 처음 일 것이다.



3. 비판적 평가


1) 성장, 기회, 정의라는 3대 가치의 논리적, 현실적 정합성?


정치의 본령은 국민이 요구하는 무수히 많은 소중한 가치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여, 권력을 통해 이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순위는 정치세력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정치세력은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없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꿈을 팔아 표를 사는 존재이기에 강조하는 핵심 가치는 정치 세력의 명운을 좌우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는 이 핵심가치를 미션, 비전, 전략으로, 혹은 국가이상, 국정지표, 국정과제로 집약했다. 전두환 정부는 ‘정의사회 구현, 선진조국 창조’를, 노태우 정부는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내걸었다. 김영삼 정부는 국가이상으로 ‘신한국창조’를, 국정지표로는 ‘깨끗한 정부, 튼튼한 경제, 건강한 사회, 통일된 조국’을 내걸었다. 김대중 정부는 국가이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지표로는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병행, 21세기 정보화사회 준비’를 내걸었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이상으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을, 국정지표로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내걸었다. 여기에 더하여 이전 정부와 달리 4대 국정원리를 공표했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기회, 책임, 공동체’로 집약된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의 핵심 가치가 소개 되면서, 몇 개의 단어로 핵심 가치를 집약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김 교수의 시도도 이런 지적 모색의 일환이다. 그런데 과연 적절하게 집약했을까? 결론만 먼저 말하면 매우 잘 집약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세력이 대표상품으로 내세우는 핵심 가치들은 우선 논리적 상호 정합성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김 교수는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김 교수의 핵심가치는 정의->기회->성장으로 연결되면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 게임규칙을 바로 세워, 기회를 보장하고, 결과적으로 고성장을 도모한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핵심 가치는 현실 정합성을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를 잘 집약하고, 고통과 불만의 구조와 근원을 잘 설명하여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핵심 가치들은 그 사회의 경제.사회 구조, 역사와 문화, 세계사적 경향, 기술 발전, 국민들의 절절한 요구와 고통, 정치세력의 득표 전략 등 수많은 요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도출된다. 특히 귀납과 연역의 무수한 반복은 핵심 가치 도출(통일, 집중)에 필수불가결하다. 핵심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 하나 하나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수십 수백개의 통계적 현실과 시대에 대한 통찰 주르르 달려있어야 한다. 그런데 김 교수 글이 얼마나 풍부한 귀납과 연역을 거쳤는지, 얼마나 풍부하고 날카로운 현실 인식 위에 서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것이 없으면 정답을 말해 놓고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여, 결과적으로 오답으로 만들어 버린다. 현실 정치의 세계는 그렇다.


2) 거버넌스 빈곤?


거버넌스는 기본적으로 지배구조를 뜻한다. 거버넌스 관점에서 민주당을 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진보적 시만사회와 소원한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당 전체의 이익과 개인 이익이 일치하는 (김대중 같은) 주인적 리더십의 부재로 인하여 당이 모래알을 연상케 하는 소상인연합회적 성격을 띠는 현실이다. 문제는 이 문제가 향후에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김대중 같은 리더십이 다시 출현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건강한 당원 대중이 (호남 향우회와 자영업자의 압도적 영향력 때문에) 주인 행세를 할 수가 있는 당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 정당처럼 당과 긴밀히 연계된 돈과 조직력이 있으면서도, 자리 욕심이 없는 이익집단이 큰 손(중심추) 역할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이 소상인연합회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면 당 전체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신(계파)의 이익에는 도움이 될지 안될지 의문스러운 사업은 추진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김대중과 달리 영남민주세력 배려에 인색했던 것도, 품질좋은 국가경영 컨텐츠 확보 혹은 전문가 우대가 곤란한 것도, 당을 위해 희생한 사람 배려에 인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주당 거버넌스의 문제는 전국 정당, 국민 정당(당원이 주인인 정당), 정책정당, 진정성이 있는 정당을 원천적으로 곤란하게 만드는 지배구조 문제이다.


그리고 김 교수가 지적하는 ‘관계 약화’ 문제는 거버넌스의 빈곤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 그냥 시민사회 단체 및 직능단체(이익집단)와 관계 약화로 표현하면 된다.


또 하나 김 교수의 성찰에서 아쉬운 것은 이른바 ‘진보적 시민사회’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김 교수가 말한 진보적 시민사회는 사실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에 다름아니다. 그 사회적 위상이나 영향력도 과거 김대중이 끊임없이 수혈 대상 1순위로 삼던 시절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상당수 진보적 시민사회 단체의 이념과 정서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친화력이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에서 보듯이 이들의 이념과 정서는 그만큼 비현실적이고, 편향되어 있다. 적어도 집권 정당이나 집권을 넘볼 정당의 그것은 아니다.


김 교수가 구태여 거버넌스라는 말을 써가며 민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네트워크와 신뢰 회복을 강조한 것은 당의 의사결정체계 혹은 지배구조에 진보적 시민사회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적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과  민주당 리더들의 ‘협치’를 주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모델은 아무래도 지난 총선 직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공천혁명(?)을 주도한 박재승의 공천심사위원회 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이 될 일인가? 아니 합리적인가?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의 경륜, 안목이 과연 ‘협치’를 할 수 있는 수준인가? 한국 정치와 정당이 불신을 받다보니, 2007년 8월 만들어진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절반의 지분을 요구한 진보적 시민사회 출신 인사(이른바 미래구상파로 불리었다)들이 그랬듯이 그 정치적 경륜이나 전문성이나 조직 능력에 비해 엄청나게 과도한 지분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김 교수의 거버넌스 관련 진단과 대안은 진보적 시민사회의 오랜 악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면이 있다.


3)조정시장경제 모델이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중도적 전략?


조정시장경제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는 얘기는 진보 진영에서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로 모인 학자들이 일찍부터 주장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장이 아무런 규제나 감독 없이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점에서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조정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다. 조정시장 경제가 시장경제의 상식을 강조하는 수준이라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정시장경제가 강조하는 것은 이런 수전이 아니다. 조정시장경제는 은행, 노조, 경제단체연합회, 지역사회, 국가 등 기업 이해관계자의 ‘협치’를 통해 시장원리를 크게 제어하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낳은 구체적인 제도와 관행이 독일에서 법제화된 ‘공동결정제’, 스웨덴에서 오랫동안 시행된 ‘연대임금 정책’등 사회적 조합주의 정책 등 이다. 일본과 독일에 뿌리내린 ‘은행중심 금융시스템’도 이러한 사고방식의 산물이며, 관료 주도의 기업,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 특혜와 관치금융이 버무려진 박정희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조정시장경제는 은행, 노조, 주주, 경영자 등 기업이해관계자들이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상호 신뢰하면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잘 해결하고, 박정희 방식이든 독일, 스웨덴, 일본 방식이든 국가가 조정, 통제에 능하면 어느 정도 효율성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분단, 한국전쟁, 2004년 대통령 탄핵사태, 부안사태, (국가보안법, 사학법,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 건으로 인한 장기 국회 공전이 보여주는) 소모적 대립, 갈등으로 점철된 정치현실, 동일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극심한 격차, 전임교수-시간강사 더 극심한 격차, 부동산 투기와 신용카드 사태를 연출한 은행들의 행태 등으로 볼 때 이해관계자들의 상호신뢰에 기반한 ‘협치’로 시장원리(소비자 주도권)나 투표(유권자 주도권과 국가의 주도권)나 자본의 주도권(inititive)를 대신하는 것은 사실상 헛된 꿈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2006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뉴딜안이 그 어떤 이해관계자의 호응을 받아내지 못한 것이나 설립취지와 달리 대기업 공기업 노조의 이익에 복무하는 노사정위원회의 행태가 그 단적인 예다.  국가, 자본, 소비자의 주도권을 이해관계자의 협치로 대신하려는 시도는 이상은 고귀하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반동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고 보아야 한다. ‘협치’를 부르짖으면 짖을수록, 이미 엄청난 기득권을 쥐고, 대표성을 행사하며, 시장원리를 별로 존중하지도, 기득권을 양보할 의사도 별로 없는 노조 같은 이해관계자들에게 더 크고 안정적인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조정시장경제의 효율적 작동을 비관하게 하는 것은 이 같은 한국의 역사, 문화, 전통 만이 아니다. 이 못지않게 비관하게 만드는 것은 세계화, 지식정보화로 인해 기술, 상품, 생산 공정, 사업장 등의 변화, 부침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돈과 사람의 신속한 이동, 변신을 요구한다. 또한 은행으로 하여금 돈 넣고 장기간 기다리면 번창할 산업이나 기업(한국의 포스코, 현대차, 조선,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게  한다. 이는 결국 금융유동성( 자본시장 중심 금융시스템), 고용.임금 유연성, 신속한 사업 구조조정(돈안되는 사업에서 신속한 철수, 돈되는 사업으로 신속한 집중)을 요구한다. 게다가 사람의 창의와 열정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노동의 양.질(성과)에 따른 차별적 처우의 필요성도 증대한다. 이는 국가.사회 차원에서는 교육, 의료, 주택, 노후 관련 사회안전망을 더욱 튼실하게 할 것을 요구하지만 기업 차원에서는 고용, 임금을 더욱 유연하게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이해관계자의 ‘상호신뢰,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증대시키지만, 법으로 강제된 ‘협치’로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4) 쌍봉낙타구조?


한국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의 귀속 집단으로 중도를 설정하는 사람들의 정견은 애초부터 그의 정견이 진보와 보수의 중간 어디쯤이어서가 아니다. 그의 어떤 정견은 보수이고, 어떤 정견은 진보이기 때문에 종합해서 자신을 중도로 규정하는 대부분 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정견에서는 진보와 보수 집단이 항상 두 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중간적, 절충적 정견은 골짜기를 이룰 만큼 적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는 아마도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도 변함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정견에서 진보와 보수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정치세력은 모름지기 확실한 진보 편이나 확실한 보수 편에 서야 한다는 결론은 논리적으로 명백히 오류이다. 한국 사회는 시장의 과잉으로 인한 패악과 과소로 인한 패악이 병존한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과잉 개입으로 인한 패악과 과소 개입으로 인한 패악이 병존한다. 그러므로 좌파적 정책과 우파적 정책이 동시에 둘 다 필요하다. 대좌파 전선과 대우파 전선의 동시 운영이 필요하다. 하지만 뿌리는 진보에 두어야 한다. 진정한 중도로 인정받으려면 언 듯 보면 모순되고, 좌충우돌하는 듯한 정책적 행보에 일관성, 통일성, 전투성을 부여해 주는 중심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가치는 대중적 언어로 풀면 청년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한 ‘더 많은 기회’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합리적 평가보상(상벌) 체계’ 곧 ‘공평’이다.  


5) 한국 진보의 정체성은?


김 교수도 언급했지만, ‘사회 불평등 해소, 공공성 제고, 사회적 약자 배려’는 한국 진보의 정체성처럼 되었다. (과거에는 많은 진보 학자와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진보의 정체성 인 것처럼 얘기했는데,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딱 한번 언급하였다. 하지만 민노당 강령에는 신자유주의가 무려 18번이나 나온다.)


어쨌든 한국에서 사회 불평등 해소, 사회적 약자배려 등은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간과되면 안되는 가치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불합리와 몰상식이 판치는 사회라는데 있다. 단적으로 한국 보수우파세력은 서구 보수파들이 오랫동안 중시해온 가치와 이념인 자유주의, 시장주의, 법치주의,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세력이다. 보수가 대표 상품으로 팔고 있는  효율성이나 경제성장조차도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만 자신들의 이익이 되는 범위에서 단기적 효율성(투입 대비 산출 극대화)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국의 자칭 보수는 보수적 가치의 핵심인 법치주의, 공정, 투명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이를 가볍게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과 부조리의 상당부분을 해결하려고 진정으로 노력하는 서구 진보를 흉내내면 순진하다거나 시대착오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한국 특유의 후진국적 모순과 부조리를 방치, 방관하기 때문이다.


한국 진보의 고질 중의 고질은 국가의 개입 부재(방관, 방치)와 시장의 과잉으로 인한 폭력(시장실패)에만 주의를 기울이면서, 국가의 과잉 개입(규제, 감독, 촉진, 경제개발, 지역개발)과 시장의 과소로 인한 폭력(시장실패+국가실패)을 너무 간과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한국은 자유로운 소비자 선택권과 엄정한 평가보상(상벌)을 핵심으로 하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의 모순과 부조리가 훨씬 악성이다. 교육(전임교수-시간강사 문제, 사학재단 문제, 교원 인사 문제 등), 조세 재정 할당, 사법 제도, 공공부문(지방정부, 공기업, 관료 인사, 정치, 정당), 청년 인재 할당(대부분 자격증으로 보호되는 부문으로 쏠린다), 연공서열식에다가 경직된 임금 고용체계, 대기업-중소기업 원하청 관계, 지역주의와 결합한 단순다수득표제 등이 그런 것이다.


정말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의 절반 이상은 국가의 과잉 개입=시장의 과소로 인한 것이다. 한국이 반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면서 전쟁과 냉전을 겪은데다가 국가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국가임을 고려하면 국가의 과잉 개입 -이 이면에는 복지 분야 등 국가의 과소 개입이 있다-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시장의 과잉으로 인한 불평등, 공공성 훼손, 사회적 약자 문제, 양극화 문제만 주목해 왔다.


1997년 외환위기가 변화시킨 것이 많아 보이지만, 꿈쩍도 하지 않은 것도 적지 않다. 사실 헌법, 선거법, 대기업 조직노동의 행태는 1987~88년에 큰 틀이 생긴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 토건족과 이익집단 편향의 재정할당 양태, 조세제도, 사법제도, 공무원 인사 제도(고시 공시제도), 자격증의 독점권 과잉 보호,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원-하청 거래관행 등은 역사적 연원이 더 오래되었다. 외환위기와 상관없이 1980년대부터 진행되어 온 지식정보화와 중국의 부상도 사회의 저변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왔다.


청년실업, 영세자영업의 어려움, 청년실업, 사교육비, 신용카드 사태, 부동산 폭등, 자살대란 등 심각한 모순과 부조리들은 대개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시장 영역의 변화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비시장 영역(법. 제도. 문화)간의 충돌에서 오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많은 오류들은 1997년 이후 본격화 한 세계화, 개방화, 자유화가 초래한 표피적 변화에만 주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진보가 자유주의의 수호자, 특히 시장원리의 존중자, 시장질서의 수호자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그렇지 않아도 사기를 쳐서라도 가져가려는) 보수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한 진보의 미래는 없다. ‘진보는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그래서 규제, 감독, 큰 정부, 분배를 중시하고, 반면에 보수는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고, 그래서 규제완화, 감독 철폐, 작은 정부, 효율을 중시한다는, 진보에 불리한 가상의 대립구도로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한 진보의 미래는 없다.


6) 김 교수가 아직도 치유하지 못한 진보의 고질병


첫째,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엄청난 모순과 부조리를 간과하고, 시장과 경쟁이 갖고 있는 강력하고 건강한 힘을 활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둘째, 시장원리=소비자 주도권(선택권), 자본의 주도권을 국가의 주도권이나 이해관계자의 ‘협치’로 대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다른 이해관계자 집단에 비해 숫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노조가 주도권을 행사 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이미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잘 조직된 집단의 이해관계를 많이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과거 왕과 무사계급의 테이블에서 백성의 운명을 논하는 격이다.


셋째, 주요한 논거(논리 기둥)가 자신이 너무 모르는 분야(일종의 모래)에 박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진보적 중도주의 실현 전략의 핵심이 조정시장경제 정책인데, 김 교수는 여기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에 진보적 중도주의 전략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넷째, 참고 자료에는 한국의 통계적 현실이 없고, 참고 문헌은 온통 외국 대가의 문헌이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는 학자적 성실성, 치열성의 징표지만, 한국 사회를 해명해야 하는 정치학, 사회학에서는 학자의 나태 내지 후진적 관성(학문 수입상)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이젠 더 이상 진지하게 참고할 것이 없는 외국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말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인용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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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가자